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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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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역사서이다. 아테네의 성장과 스파르타의 공포가 전쟁의 주요 원인이며, 투키디데스는 엄격한 연대기적 방법론과 연설을 활용하여 전쟁의 배경, 전개, 각 세력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려 했다. 그는 객관적인 기록을 추구했지만, 친아테네적인 편향성을 가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 책은 전쟁의 전개, 권력 정치, 인간 본성, 민주주의와 과두 정치 등을 주요 주제로 다루며, 고대 및 현대 역사 서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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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서적]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저자투키디데스
언어고대 그리스어
국가고전기 아테네
장르역사
출판사여러 출판사
출판일기원전 5세기 후반
제목 (원어)
고대 그리스어Ιστορία του Πελοποννησιακού Πολέμου
영어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일본어ペロポネソス戦争史
기타
투키디데스역사 10세기 미뉘스큘 필사본

2. 역사적 배경 및 방법론

투키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리스 세계를 뒤흔들 대전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 전쟁의 기록을 통해 후세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경과를 기록한 것으로,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대에 붙여진 제목은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으로 불리며,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서술로 유명하다. 이야기 서술 방식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대비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정치가와 장군들의 연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또한 큰 특징 중 하나이다.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역사 서술 방법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사건을 연대순으로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사건이 일어난 해를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기록하는 엄격한 연대기적 방법을 사용했다.[4] 이는 헤로도토스의 방식과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투키디데스는 전쟁 당사자들의 연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전쟁 전 장군들이 군대에게 한 연설, 아테네스파르타 지도자들의 정치 연설, 그리고 여러 당파 간의 논쟁 등을 기록에 포함했다.[5] 이 연설들은 사건의 배경과 동기, 그리고 각 세력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연설은 2권에 나오는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이다. 투키디데스는 전쟁 중 아테네 장군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이러한 연설 중 일부를 직접 들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존했다.[5]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기록할 때 객관성과 실증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목격자 증언과 사료 비판을 통해 사실에 근거한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다. 그의 저술에서 신들은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역사는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았다.[10] 이는 신들의 역할을 자주 언급했던 헤로도토스와는 매우 다른 점이다.

투키디데스호메로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호메로스를 정보의 출처로 자주 언급했지만, "호메로스는 이렇게 보여주지만, 그것이 충분한 증거인지는 의문이다"와 같이 거리두기를 하는 표현을 사용했다.[12] 그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사용하여 트로이 전쟁에 대한 사실을 추론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호메로스의 이야기 전달 방식과는 거리를 두면서, 자신은 과장을 일삼는 시인이 아니라 "사실의 진실"을 추구하는 역사가임을 강조했다.[13]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411년의 기록을 끝으로 갑자기 중단되어 미완성으로 남았다. 집필 시기에 대해서는 한꺼번에 썼다는 설과 조금씩 써서 모았다는 설이 있다. 크세노폰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에 인계되어 기원전 411년 이후의 역사는 《헬레니카》( Ἑλληνικά grc, ''Hellenica'')에 정리됨으로써,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기술은 완결되었다.

2. 1.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배경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주요 원인을 "아테네의 힘의 성장과 이것이 스파르타에 불러일으킨 공포"(1.23.6)라고 설명한다.[24] 그는 '역사' 제1권(1.89–1.18)에서 기원전 479년부터 기원전 432년까지 아테네 제국의 성장을 통해 아테네 세력의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제국의 정당성은 여러 구절에서 논의되는데, 특히 1.73–78의 연설에서 익명의 아테네 사절단이 제국이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아테네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근거를 들어 제국을 옹호하는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이후 제국의 확장에 대해 이 아테네인들은 "...상황의 본질이 우리를 먼저 현재의 높이까지 제국을 확장하도록 강요했고, 공포가 우리의 주된 동기였지만, 명예와 이익이 그 뒤를 따랐다."(1.75.3)라고 주장한다.[24]

아테네인들은 또한 "우리는 특별한 일도, 인간 본성에 반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제국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받아들이고, 그 후 그것을 포기하기를 거부한 것이다."(1.76)라고 주장한다.[24] 그들은 자신의 입장에 있는 누구라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파르타는 더 전통적이고 신중하며, 덜 확장적인 세력을 나타낸다. 실제로 아테네인들은 '역사' 6권과 7권에 묘사된 시칠리아 원정이라는 제국주의적 과도한 확장의 가장 큰 행위로 거의 멸망 직전에 놓인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기원전 433–432년)은 다음과 같다(1.24–1.66).[24]

  • 에피담누스 사건 (1.24–1.55)
  • 포티다이아 사건 (1.56–1.66)

2. 2. 투키디데스의 역사 서술 방법론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하면서 이전의 역사 서술 방식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사용했다.

투키디데스는 사건을 연대순으로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난 해를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기록하는 엄격한 연대기적 방법을 사용했는데,[4] 이는 헤로도토스의 방식과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투키디데스는 전쟁 당사자들의 연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전쟁 전 장군들이 군대에게 한 연설, 아테네와 스파르타 지도자들의 정치 연설, 그리고 여러 당파 간의 논쟁 등을 기록에 포함했다.[5] 이 연설들은 사건의 배경과 동기, 그리고 각 세력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연설은 2권에 나오는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이다. 투키디데스는 전쟁 중 아테네 장군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이러한 연설 중 일부를 직접 들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존했다.[5] 다만, 일부 학자들은 투키디데스가 주장의 요점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연설을 어느 정도 수정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6]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기록할 때 객관성과 실증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목격자 증언과 사료 비판을 통해 사실에 근거한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다. 그의 저술에서 신들은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역사는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았다.[10] 이는 신들의 역할을 자주 언급했던 헤로도토스와는 매우 다른 점이다. 하지만, 종교와 경건함은 스파르타인들과 아테네인들의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0] 지진과 일식과 같은 자연 현상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11]

투키디데스는 호메로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호메로스를 정보의 출처로 자주 언급했지만, "호메로스는 이렇게 보여주지만, 그것이 충분한 증거인지는 의문이다"와 같이 거리두기를 하는 표현을 사용했다.[12] 그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사용하여 트로이 전쟁에 대한 사실을 추론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호메로스의 이야기 전달 방식과는 거리를 두면서, 자신은 과장을 일삼는 시인이 아니라 "사실의 진실"을 추구하는 역사가임을 강조했다.[13]

3. 전쟁의 전개

투키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리스 세계를 뒤흔들 대전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훗날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이 전쟁의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그는 서문에서 이러한 집필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경과를 총 8권에 걸쳐 기록하고 있다.[24] 각 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권: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배경 (기원전 432년까지)
  • 2권: 기원전 431년 ~ 기원전 429년
  • 3권: 기원전 428년 ~ 기원전 425년
  • 4권: 기원전 425년 ~ 기원전 423년
  • 5권: 기원전 422년 ~ 기원전 416년
  • 6권: 기원전 416년 ~ 기원전 414년
  • 7권: 기원전 414년 ~ 기원전 413년
  • 8권: 기원전 413년 ~ 기원전 411년


이 책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와는 달리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서술 방식을 택했으며, 곳곳에 등장하는 정치가와 장군들의 연설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411년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갑작스럽게 중단되어 미완성으로 남았다.[24] 이후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 집필 작업을 이어받아 《헬레니카》( Ἑλληνικά grc, ''Hellenica'')에서 기원전 411년 이후의 역사를 정리함으로써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기록이 완결되었다.[24]

3. 1. 초기 전쟁 (기원전 431년 ~ 기원전 421년)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21년까지의 초기 전쟁은 아르키다모스의 이름을 따서 아르키다모스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 전쟁의 시작과 동맹:

사건내용
테베의 플라타이아 공격 시도테베가 플라타이아를 약화시키려 시도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24](2.1-2.6)
동맹전쟁 참가자들의 동원과 동맹국 목록이 제시된다.[24](2.7-2.9)


  • 아티카 침략과 아테네의 대응:

사건내용
아티카 침략아르키다모스 2세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군대가 아티카를 침략하고, 아테네는 이에 대한 준비와 시골 지역 포기를 결정한다.[24](2.10-2.23)
오이노이와 아카르나이 파괴아르키다모스 2세는 오이노이와 아카르나이를 파괴한다.[24](2.18-2.20)
페리클레스에 대한 분노아테네인들은 페리클레스에게 분노한다.[24](2.21-2.22)
아테네의 해군 반격아테네는 해군을 이용하여 펠로폰네소스와 섬들의 해안을 따라 반격한다.[24](2.23-2.32)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페리클레스는 전몰자들을 추모하며 아테네의 가치를 강조하는 연설을 한다.[24](2.34-2.46)
아테네의 역병아테네에 역병이 발생하여 큰 피해를 입는다.[24](2.47-2.54)
아티카 재침략과 아테네의 해군 반격펠로폰네소스 군대가 다시 아티카를 침략하고, 아테네는 다시 해군으로 반격한다.[24](2.55-2.58)
페리클레스의 세 번째 연설페리클레스는 자신의 입장과 정책을 옹호한다.[24](2.59-2.64)
투키디데스의 평가투키디데스페리클레스의 자질과 고전 아테네의 패배 원인을 평가한다.[24](2.65)


  • 기타 지역 분쟁 및 사건:

사건내용
기타 지역 분쟁트라키아, 섬들, 북동부 지역에서 외교 및 소규모 충돌이 발생한다.[24](2.66-2.69)
포티다이아 함락아테네가 포티다이아를 함락시킨다.[24](2.70)
플라타이아 포위펠로폰네소스 군대가 플라타이아를 포위한다.[24](2.71-2.78)
포르미오의 해전 승리북동부 지역에서 포르미오가 해전에서 승리한다.[24](2.80-2.92)
피라이에우스 습격 위협펠로폰네소스 군대가 피라이에우스를 습격하려 한다.[24](2.93-2.94)
트라키아 원정마케도니아에서 시탈케스 지휘하의 트라키아 원정이 이루어진다.[24](2.95-2.101)
아티카 연례 침략펠로폰네소스 군대가 매년 아티카를 침략한다.[24](3.1)


사건내용
미틸레네 반란미틸레네가 반란을 일으킨다.[24](3.2-3.50)
미틸레네 사절단의 연설미틸레네 사절들이 스파르타에 도움을 요청하며 올림피아에서 연설한다.[24](3.9-3.14)
스파르타의 지원스파르타는 레즈보스를 동맹국으로 받아들이고 아테네에 대항할 준비를 한다.[24](3.15)
미틸레네 항복스파르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미틸레네는 아테네에 항복한다.[24](3.28)
미틸레네 논쟁미틸레네 논쟁이 벌어진다.[24](3.37-3.50)
플라타이아 함락플라타이아가 함락된다.[24](3.20-3.24, 3.52-68)
플라타이아인들의 탈출과 항복일부 플라타이아인들이 탈출하고, 나머지는 항복한다.[24](3.20-3.24, 3.52)
플라타이아인들의 재판과 처형플라타이아인들의 재판과 처형이 이루어진다. 플라타이아인들과 테베인들의 연설이 진행된다.[24](3.53-3.68)


  • 코르키라 혁명, 시칠리아 원정, 그리고 기타 사건:

사건내용
코르키라 혁명코르키라에서 혁명이 발생하고, 투키디데스는 내전의 악에 대해 설명한다.[24](3.70-3.85)
시칠리아 원정아테네가 시칠리아 원정을 떠난다.[24](3.86, 3.90, 3.99, 3.103, 3.115-3.116)
쓰나미와 원인 조사쓰나미가 발생하고 그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24](3.89.2-5)
그리스 서부 원정그리스 서부 지역에서 데모스테네스의 원정이 이루어진다.[24](3.94-3.98, 3.100-3.102, 3.105-3.114)
트라키스의 헤라클레이아 건설스파르타인들이 트라키스의 헤라클레이아를 건설한다.[24](3.92-3.93)
델로스 정화아테네인들이 델로스를 정화한다.[24](3.104)


  • 필로스 전투와 스파크테리아 전투:

사건내용
필로스 점령아테네인들이 펠로폰네소스의 필로스를 점령한다.[24](4.2-4.6)
아티카 침략 중단스파르타의 왕 아기스가 아티카 침략을 중단하고 펠로폰네소스로 돌아온다.[24](4.6)
필로스 공격스파르타가 필로스에 있는 아테네 요새를 공격한다. 아테네 장군 데모스테네스필로스 방어를 지휘하고 연설로 군대를 격려한다. 스파르타 사령관 브라시다스가 용맹함으로 이름을 알린다.[24](4.8-4.15)
스파크테리아 봉쇄아테네인들이 필로스 공격을 격퇴하고 스파크테리아 섬에 주둔한 스파르타인들을 봉쇄한다.[24](4.13-4.14)
평화 협상스파르타인들은 섬에 있는 병사들을 걱정하여 휴전을 맺고 평화 협상을 위해 아테네에 사절을 보낸다. 스파르타 사절들은 스파크테리아의 병사들을 돌려주는 대가로 아테네와 평화 및 동맹을 제안하는 연설을 한다. 아테네의 클레온은 의회에서 연설하며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결 시 아테네가 항복한 영토의 반환을 요구하도록 격려한다.[24](4.13-4.22)
시칠리아 사건시칠리아에서 사건이 발생한다.[24](4.24-4.25)
스파크테리아 포위 지속스파크테리아에 갇힌 스파르타인들의 포위는 계속된다.[24](4.26-4.27)
클레온의 지휘클레온이 필로스에서 지휘권을 맡는다.[24](4.27-4.29)
스파크테리아 전투스파크테리아 전투는 갇힌 모든 스파르타인들의 포로로 이어진다.[24](4.29-4.41)


  • 기타 전투 및 사건:

사건내용
코린토스 공격니키아스가 아테네의 코린토스 공격을 이끈다.[24](4.42-4.45)
코르키라 혁명 종식코르키라 혁명이 종식된다.[24](4.46-4.48)
키테라와 티레아 점령아테네인들이 키테라 섬과 티레아 도시를 점령하고, 스파르타는 사방에서 포위되어 절박한 상황에 처한다.[24](4.53-4.57)
겔라 회의시칠리아 도시들이 겔라에서 회의를 열고 평화를 맺어 아테네의 섬 계획을 좌절시킨다. 겔라에서의 헤르모크라테스의 연설이 있었다.[24](4.58-65)
메가라 공격아테네가 메가라를 공격한다. 니사이아를 점령하고, 메가라에서 결정적이지 않은 교전이 발생하지만, 메가라는 아테네의 점령을 피한다.[24](4.66-4.74)
보이오티아 침략아테네가 보이오티아를 침략하고, 델리온 전투에서 아테네인들이 패배하고 사원으로 후퇴한다.[24](4.76, 4.89-4.101.2)
브라시다스의 트라키아 진군브라시다스가 테살리아를 통해 트라키아로 진군하고 아테네의 속국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한다. 브라시다스가 아칸토스인들에게 연설한다.[24](4.78-4.88)
암피폴리스 함락브라시다스가 암피폴리스를 함락시킨다.[24](4.102-4.108)
브라시다스의 계속되는 성공브라시다스는 트라키아에서 계속 성공한다. 브라시다스는 토로네 수비대의 반란을 확보하고, 아테네인들과 스파르타인들 사이에 1년 휴전이 체결되지만, 스키오네가 아테네에서 브라시다스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휴전이 깨진다. 아테네인들이 멘데를 탈환하고 스키오네를 포위한다.[24](4.111-4.135)
클레온과 브라시다스의 죽음클레온과 브라시다스가 죽는다.[24](5.10)
니키아스의 평화니키아스의 평화가 체결된다.[24](5.13-5.24)


3. 2. 니키아스 평화 (기원전 421년 ~ 기원전 415년)

니키아스의 평화는 기원전 421년에 아테네스파르타 사이에 체결된 평화 조약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반부를 종식시켰다.[24] 하지만 이 평화는 불안정했고, 양측 모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스파르타는 필로스 전투와 스팍테리아 전투에서 잃은 포로들을 돌려받았지만, 아테네암피폴리스를 점령하지 못했다. 아테네 내부에서는 클레온과 브라시다스의 죽음 이후 주전파의 목소리가 약해지고, 니키아스를 중심으로 한 평화파가 득세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코린토스, 메가라, 보이오티아 등은 평화 조약에 반대하며 스파르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아르고스스파르타와의 30년 평화 조약이 만료되자, 만티네이아, 엘리스 등과 함께 새로운 동맹을 맺고 스파르타에 대항했다.

기원전 418년에는 만티네이아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중 가장 큰 규모의 육상 전투였으며, 스파르타와 그 동맹국들이 아르고스 동맹군을 상대로 승리했다. 이 승리로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의 주도권을 다시 확립했다.

기원전 416년, 아테네는 멜로스 섬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멜로스 대화는 이 과정에서 아테네 사절단과 멜로스 지도자들 사이에 벌어진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강대국의 권력 정치와 약소국의 운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투키디데스는 이 대화를 통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14] 아테네는 멜로스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팔았다.

3. 3. 시칠리아 원정 (기원전 415년 ~ 기원전 413년)

기원전 416년부터 기원전 413년까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시칠리아 원정과 관련된 사건들은 다음과 같이 6권과 7권에 기록되어 있다.

  • '''제6권 (기원전 415년 ~ 기원전 414년)'''

  • * 시칠리아 원정 (6.8–6.52)

  • ** 시칠리아의 초기 역사 (6.1–6.6)
  • ** 니키아스알키비아데스의 연설 (6.8–6.26)[24]
  • ** 헤르메 사건 (6.27–6.29, 6.53)
  • ** 시칠리아 원정 출발 (6.30–6.32)
  • ** 시라쿠사에서 헤르모크라테스와 아테나고라스의 연설 (6.33–41)
  • ** 아테네 군의 시칠리아 도착 (6.42–52)
  • *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기톤에 대한 논의 (6.53–6.58)
  • * 알키비아데스의 소환과 도주 (6.60–6.61)
  • * 시라쿠사에서 아테네의 승리 (6.62–6.71)
  • ** 카마리나에서 헤르모크라테스와 에우페무스 사이의 논쟁 (6.72–6.88)
  • * 스파르타에서 알키비아데스 (6.88–6.93)
  • * 시라쿠사에서 아테네의 승리 (6.94–103)
  • ** 스파르타가 길리푸스를 시칠리아로 파견하고, 아르고스에서 아테네와 충돌 (6.104–105)

  • '''제7권 (기원전 414년 ~ 기원전 413년)'''

  • * 길리푸스의 시라쿠사 도착 (7.1–7.3)
  • * 데켈레아 요새화 (7.19–7.30)
  • * 시라쿠사 군의 성공
  • * 데모스테네스 도착
  • * 에피폴라이에서 아테네 군의 패배 (7.42–7.59)
  • * 니키아스의 어리석음과 완고함
  • * 대항만에서의 전투
  • * 아테네 군대의 후퇴와 궤멸 (7.72–7.87)

3. 4. 전쟁의 종결 (기원전 413년 ~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411년의 기록을 끝으로 갑자기 중단되어 미완성으로 끝났다.[24] 집필 작업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에게 이어져, 기원전 411년 이후의 역사는 《헬레니카》( Ἑλληνικά grc, ''Hellenica'')에 정리되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기록은 완결되었다.[24]

8권은 기원전 413년부터 기원전 411년까지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아테네의 불신과 절망[24]
  • 동맹국들의 반란[24]
  • 페르시아가 스파르타에 지원[24]
  • 아테네의 비상금 관련법 개정[24]
  •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동맹[24]
  • 아테네의 과두정치 성립, 민주주의 종식, 알키비아데스 귀환[24]
  • 400인 폭정[24]
  • 과두정치의 붕괴[24]
  • 트라시불루스와 트라시율루스의 해전 승리로 아테네의 희망 회복[24]
  • 알키비아데스 귀환[24]

4. 주요 주제 및 분석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단순한 전쟁의 진행 과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이 책은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서술로 알려져 있으며, 이야기 서술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대비된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정치가와 장군들의 연설은 중요한 특징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후대에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리스 세계를 뒤흔들 대전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고, 후세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이 책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군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전쟁이 인류에게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영향에 대해서도 논한다. 특히, 전쟁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저지른 잔혹 행위와 무법 행위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멜로스 대화와 같은 사건들은 현실정치의 초기 사례를 보여준다. 또한, 정의와 권력의 상호 작용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묘사는 모호한 면이 있지만,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보여주기도 한다.[14]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411년의 기록을 끝으로 중단되어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후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 집필을 이어받아 《헬레니카》에서 기원전 411년 이후의 역사를 정리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기록을 완결했다.

4. 1. 전쟁과 인간 본성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리스 세계를 뒤흔들 대전으로 발전할 것이라 예상하고, 후세에 교훈을 주기 위해 전쟁사를 집필했다. 그는 신들의 개입보다는 인간의 선택과 행동이 역사를 만든다고 보았으며, 이는 신들의 역할을 중시한 헤로도토스와는 다른 점이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경건은 스파르타인들과, 덜하지만 아테네인들의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0] 지진과 일식과 같은 자연 현상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11]

4. 2. 권력 정치와 국제 관계

투키디데스는 《역사》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주된 원인을 "아테네의 힘의 성장과 이것이 스파르타에 불러일으킨 공포"(1.23.6)였다고 설명한다.[7] 그는 《역사》 제1권(1.89–118)에서 기원전 479년부터 기원전 432년까지 아테네 제국의 성장을 통해 아테네 세력의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제국의 정당성은 여러 구절에서 논의되는데, 특히 1.73–78의 연설에서 익명의 아테네 사절단이 제국이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아테네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근거를 들어 제국을 옹호하는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이후 제국의 확장에 대해 이 아테네인들은 "...상황의 본질이 우리를 먼저 현재의 높이까지 제국을 확장하도록 강요했고, 공포가 우리의 주된 동기였지만, 명예와 이익이 그 뒤를 따랐다."(1.75.3)라고 주장한다.[7]

아테네인들은 또한 "우리는 특별한 일도, 인간 본성에 반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제국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받아들이고, 그 후 그것을 포기하기를 거부한 것이다."(1.76)라고 주장한다.[7] 그들은 자신의 입장에 있는 누구라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파르타는 더 전통적이고 신중하며, 덜 확장적인 세력을 나타낸다. 실제로 아테네인들은 《역사》 6권과 7권에 묘사된 시칠리아 원정이라는 제국주의적 과도한 확장의 가장 큰 행위로 거의 멸망 직전에 놓인다.

4. 3. 민주주의와 과두 정치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인이자 전쟁 참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당사자들에 대해 대체로 객관적인 기록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서문에서 "나의 저술은 당대 대중의 취향에 맞추어 쓰여진 것이 아니고, 영원히 남도록 하기 위해 쓰여졌다"라고 밝혔다(1.22.4).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투키디데스가 강한 친아테네 편향을 가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7] 어니스트 바디언(Ernst Badian)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에 유리한 비객관적인 이원론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8] 그의 저술은 클레온(Cleon)과 같은 전쟁 관련 인물들에 대한 명백한 편견을 보여준다.[9]

5. 투키디데스의 영향 및 평가

투키디데스는 서구 역사 발전에 핵심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그의 방법론은 역사 서술 분야에서 많은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4] 역사학자 J. B. 버리는 투키디데스의 저술이 "단 한 사람이 역사를 오늘날과 같이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길고 결정적인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평가했다.[18]

역사학자 H. D. F. 키토는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쓴 것은 고대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많은 고통을 야기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투키디데스 저서의 여러 구절은 "사포 자신조차도 거의 능가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으로" 쓰여졌다.[19]

카를 포퍼는 그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투키디데스를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가"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포퍼는 투키디데스의 저술이 "해석, 관점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 점에 대해 우리는 동의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아테네 민주주의와 "스파르타의 정체된 과두 정치 부족주의" 사이의 전쟁에서 투키디데스의 "무의식적인 편향"과 "그의 마음은 그의 고향인 아테네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 "그는 전쟁 내내 적과 공모한 아테네 과두파 클럽의 극단주의자에 속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확실히 과두파의 일원이었고, 그를 추방했던 아테네 시민, 데모스, 또는 그들의 제국주의 정책 모두와는 친구가 아니었다."[20]

투키디데스의 『역사』는 고대와 현대의 역사 서술 모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시대인들과 직계 후계자들은 이 책을 열렬히 받아들였고, 많은 저술가들이 미완성된 역사를 완성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크세노폰은 투키디데스의 저작이 끝나는 바로 그 시점부터 시작하여 그의 『헬레니카』를 투키디데스의 작품의 연속으로 썼다. 후대 고전 시대에 투키디데스의 명성은 다소 떨어졌는데,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와 같은 비평가들은 『역사』를 과장되고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비판했다. 루키아노스는 그의 풍자 작품 『진실된 역사』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이 책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우드로 윌슨은 베르사유 조약 체결 회의로 향하는 대서양 횡단 항해 중에 『역사』를 읽었다.[21]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그는 직접 이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는 투키디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 시에서는 호메로스,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웅변에서는 데모스테네스, 그리고 고대의 다른 학자들이 다른 분야에서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여러 사람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그들 중 누구도 능가하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근대에 와서도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우리의 투키디데스도 정당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전자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장인이었고, (나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믿는다) 역사를 쓰는 능력이 그에게서 최고조에 달했다.[22]

6. 한국어 번역본


  • 久保正彰|구보 마사아키일본어 역, 《トゥーキュディデース 戦史|투키디데스 전사일본어》, 岩波文庫|이와나미 문고일본어(상중하), 1966-67년, 신장복간 1997년, 2008년, 2014년, 2017년 외
  • 발췌본: 《トゥキュディデス 戦史|투키디데스 전사일본어》, 中央公論新社|주오공론신사일본어〈中公クラシックス|주공클래식스일본어〉, 2013년. (해설: 桜井万里子|사쿠라이 마리코일본어)
  • 小西晴雄|고니시 하루오일본어 역, 《トゥキュディデス 歴史|투키디데스 역사일본어》, ちくま学芸文庫|치쿠마 가쿠게이 문고일본어(상하), 2013년
  • 원판: 《トゥーキュディデース 歴史|투키디데스 역사일본어》, 筑摩書房|치쿠마쇼보일본어〈世界古典文学全集|세계고전문학전집일본어〉11, 1971년, 복간 1989년, 2005년 외
  • マルケリノス|마르켈리노스일본어의 《トゥキディデス伝》 병록. (역자는 재외 연구자이므로 일본어 저서는 이 책뿐이다.)
  • 藤縄謙三|후지나와 켄조일본어·城江良和|시로에 요시카즈일본어 역, 《トゥキュディデス 歴史|투키디데스 역사일본어》, 京都大学学術出版会|교토대학학술출판회일본어〈西洋古典叢書|서양고전총서일본어〉전2권, 2000-2003년. (각 권 분담 번역)


'''초판 번역본'''

  • 青木巌|아오키 이와오일본어 역, 《トゥーキューディデース 歴史|투키디데스 역사일본어》, 生活社|생활사일본어(상하), 昭和|쇼와일본어 17-18년, 신판·昭和|쇼와일본어 21년(1946년)
  • 전후 간행된 신판에서는 시국 변전으로 역자 후기를 개변.
  • 역자(1900~73년)는 《歴史 (ヘロドトス)》의 초판 번역자이기도 하다. 昭和|쇼와일본어 15-16년에 生活社|생활사일본어(상하)에서 출판.

참조

[1] 논문 Thucydides 'as History' and 'as Literature'
[2] 서적 History of Greece New York
[3] 서적 Thucydides Princeton
[4] 서적 A handbook to the reception of Thucydides http://worldcat.org/[...] John Wiley & Sons, Ltd
[5] 서적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http://dx.doi.org/10[...] Oxford University Press 2021-10-15
[6] 논문 The Speeches in Thucydides and the Mytilene Debate
[7] 논문 Thucydides and the Outbreak of the Peloponnesian War. A Historian's Brief Columbus
[8] 서적 Inventing Homer: The Early Reception of Epic https://books.google[...]
[9] 서적 Individuals in Thucydid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0] 논문 Religion in Thucydides 1986-01-01
[11] 논문 Preliminary Observations on the gods in Thustaams Work
[12] 서적 Inventing Homer: The Early Reception of Epic
[13] 서적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14] 논문 Thucydides, the Outbreak of the Peloponnesian War, and the Foundation of International Systems Theory https://www.jstor.or[...]
[15] Thucydides
[16] 논문 'Tsunamis' in Greek Literature
[17] 웹사이트 Homer https://oxfordre.com[...] 2021-10-17
[18] 서적 The Ancient Greek Historians Dover Publications
[19] 뉴스 Kitto At BC https://newspapers.b[...]
[20] 서적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2-11-12
[21] 서적 Woodrow Wilson (The American President Series) Times Books
[22] 서적 Eight bookes of the Peloponnesian Warre written by Thucydides the sonne of Olorus.
[23] 서적 Histories: book 3. Edited with notes, for the use of schools https://archive.org/[...] Oxford Clarendon Press
[24] 서적 Prolegomena to the Peloponnesian War: Thucydides Book 1 https://www.cambrid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5] 서적 The Peloponnesian War https://books.google[...] OUP Oxford 200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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